독일에서의 일상/독서 후기

[독서 후기] 토마스 쿡, 붉은 낙엽

방구석_입축구_전문가 2020. 2.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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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리언이 부식성이 강한 액체를 토하자, 그 액체는 순식간에 우주정거장의 한 층을 먹어 치웠고 차례로 다른 층까지 먹어 들어갔다. 내 생각에 그 액체는 의심과도 같았다. 의심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고, 오랜 신뢰와 헌신의 수준을 차례차례 부식시키며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의심은 언제나 바닥을 향한다

 

토마스 쿡, 붉은 낙엽



한때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즐겨 듣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휴식(어쩌면 폐지) 중이라 새로운 업로드가 없지만, 나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다양한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 방송이었다.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동진 평론가님과 김중혁 작가님의 수다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똑똑해지는 기분이랄까. 물론 그럴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하지만 한가지 단점이라면 선택하고 토론하는 책들이 전반적으로 무게감(심적으로나 실제 물리적으로나)이 있어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붉은 낙엽은 장르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쉽게 접근이 가능하였다.

 


최근에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질 일이 있어 누워있을 시간이 많아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입원을 하였고, 이 책도 역시 선택되었다. 
읽다가 중간에 깨달았는데 내가 전에 읽었었다... 점점 내용이 생각나고 예상까지 되었지만 그래도 두 번 읽지뭐 하는 마음으로 끝냈다. 

 

전반적인 느낌은 글로 읽는 소설 책이지만 머릿속으로 그림이 잘 그려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비극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고, 이러한 불신, 의심들은 눈에 잘 안띄지만 잘 퍼진다.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붉은 낙엽을 자세히 보면 보이는 검은 점들
사람 몸에 소리없이 퍼져가고 있는 암세포
기생충에 나온 것 같은 냄새, 바퀴벌레 
이 모든 것들은 점점 몸을 불려가며 세력을 키우지만 눈에 띄지 않는 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의심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 이 책의 장르를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모르겠다. 
추리 소설과 비슷한 형식을 가져가지만, 일반적인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읽고 이렇게 생각을 많이하게된 적은 없었다. 
마치 추리소설의 형식을 가져다 쓴 문학 소설이랄까. 

 

어린 아들이 받았을 고통의 크기와 
믿기 힘든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의심을 키워나가는 주인공의 자괴감과
변해가는 남편을 보며 실망하는 와이프
자신의 딸을 납치했을 거라고 친한 가족의 아들을 의심하는 아빠까지.

 

모두가 각자 본인만의 의심을 하면서 고통받는 것이 읽는 독자로 하여금 함께 안타깝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 마음에 들었던 내용 중 하나는 바로 익명의 제보 전화였다. 
마치 근원지를 모르는 의심이 점차 커가듯이, 경찰에게 걸려오는 제보 역시 출처가 어딘지 모르며 사실인지도 모르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갈 수록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가는 것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심리상태의 변화와 너무 닮아 있었다. 

 

 

한번쯤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생각하게 되는 소설. 
속도감있게 읽히지만 가슴에서 결국 체해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붉은 낙엽
국내도서
저자 : 토머스 H. 쿡(Thomas H. Cook) / 장은재역
출판 : 고려원북스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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